시조사채널

본문 바로가기
더보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성소, 재림 전 심판, 예언의 신에 관한 질문과 답변

11. 엘렌 화잇은 1888년 미니애폴리스 대총회를 계기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자신의 증언을 수정했는가?

글씨크기

본문

1887년 8월 11일 목요일 정오, 엘렌 화잇은 2년간 유럽 전도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상륙했다. 화잇 여사는 곧바로 뉴잉글랜드 지역 야영회에서 설교했고, 오하이오, 일리노이, 뉴욕 주의 야영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10월 4일에 캘리포니아 집으로 향하기 위해 배틀크릭에서 밤 열차를 탔다. 11월 13일에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교회에서 26차 대총회가 개최되었다. 그 당시 대총회는 매년 열렸다. 화잇 여사는 대총회 참석 후 힐즈버그 자택에서 <각 시대의 대쟁투>와 <부조와 선지자>를 탈고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1888년 3월 16일, 화잇 여사는 프레즈노에 며칠 머물렀다. 셀마에서 야영회가 있었고 4월 2일에 마쳤다. 힐즈버그 자택으로 돌아와 다시 집필에 전념했다. 5월 24일에 시작한 리노의 야영회에도 참석했다.

화잇 여사가 로키 산맥을 넘어 미니애폴리스의 1888년 대총회에 참석한 것은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화잇 여사는 이미 그녀의 경고와 양육의 특별한 사업에 대한 저항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은 미니애폴리스에서 겪을 더 큰 저항에 대한 전조였다. 선지자의 책망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널리 유포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화잇 여사는 용기가 꺾여 힐즈버그 자택에서 병을 앓았다. 회복되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였다. “기도도 안 나오고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라고 나중에 술회했다. 오클랜드 야영회가 끝나고 화잇 여사는 동행들과 함께 동부로 떠났다.

앞서 2년간 갈라디아의 율법에 관하여 재림신도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이미 1854년 J. H. 왜거너는 갈라디아서 3:19의 “더하여진” 율법과 “몽학선생(초등교사)”이 의문의 법이 아니라 도덕법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율법은 의문의 법이나 레위기법이 아니라고 하는 논쟁적인 입장을 취했다. 왜거너의 입장이 잘못되었다고 화잇 여사가 편지했다며 유라이어 스미쓰는 그 책을 팔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1880년 중반에 왜거너의 아들 E. J. 왜거너 의사는 화잇 여사가 야영회에서 낭독한 설교에 깊이 감동되었다. 화잇 여사의 설교를 듣는 중에 그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 후로 그는 이 구원하는 진리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1888년 미니애폴리스 대총회에서 왜거너 의사는 자기가 깨달은 하나님의 의에 관하여 감동적인 설교를 했다. 율법주의적인 입장에 선 버틀러 목사와 스미쓰 목사를 중심으로 한 무리의 거센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화잇 여사는 왜거너의 설교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 후 화잇 여사와 왜거너 의사, 존스 목사 등은 전역을 다니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교하며 교회의 신앙적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힘을 모았다.

엘렌 화잇과 구원의 조건
화잇 여사는 1888년 대총회를 계기로 자신의 구원관을 수정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라고 해야 옳다.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의 사자로서 구원의 조건에 관하여 일관성 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혹자는 1888년 이후 화잇 여사의 구원론이 수정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의 구원관은 초지일관 변화가 없었다. 오늘날 칭의와 무조건적 사랑을 더 많이 강조하는 교회 내의 풍조 때문에 화잇 여사의 분명한 진술이 ‘물타기 작전’에 희생되었지만 화잇 여사는 너무도 분명히 구원의 조건을 말한다. 1892년에 발행된 <정로의 계단> 62~63쪽을 보자.

“영생을 얻는 조건은 지금도 옛날(에덴 낙원에서 우리의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과 똑같으니 곧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완전한 의가 요구된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품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에 실패했고 그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의 본성은 타락해서 우리는 스스로 의로울 수 없게 되었다. 또 우리는 죄가 많고 거룩하지 못하므로 거룩한 율법을 완전히 지킬수 없게 되었다. …그대가 자신을 그에게 바치고 그를 그대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의 생애가 아무리 악했을지라도 그의 공로로 인하여 그대는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신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동안에는 그는 그대가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마음가운데서 역사하시면 그대는 같은 정신을 나타낼 것이며 또한 같은 행실(의와 순종의 행실)을 행할 것이다.”

요컨대, 구원으로 시작되는 영생의 조건은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죄인은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고 율법을 순종하게 하신다. <정로의 계단>은 1892년에 출판되었다. 이것은 1888년의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이후의 일이다. 혹자는 이 글에서 율법을 강조하는 화잇 여사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율법주의자가 아닐까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율법주의자가 아니었다. 율법을 강조했지만, 율법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고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초지일관 화잇 여사가 견지했던 구원관이었다. 1888년 대총회 이전에 화잇 여사가 쓴 여러 기사들에도 이와 같은 구원관이 계속 등장했다. 1885년 화잇 여사의 원고를 보자.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아 하늘 왕국에 있지 못할 것임을 믿습니다. 범법자는 영광의 왕국에 들어 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서서 ‘그대의 죄가 도말되도록 회개하라’고 부르짖는 것이므로 어느 누구를 성화시키거나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 죄인이 예수께로 나아가서 죄인으로서 그가 율법의 요구를 순종하겠다고 약속하게 될 때에 그분은 그들의 죄된 흠을 도말하시고 자유롭게 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능력을 베푸는 것입니다.”(원고 5, 1885; 가려 뽑은 기별 제3권, 153).

“이것은 내게 새 빛이 아니었다”
1888년 대총회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설교를 듣고 나서 화잇 여사는 그 주제에 관하여 이렇게 술회했다.
“이 집회에서 나는 율법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의의 위대한 주제를 제시함을 통해 가장 고귀한 빛이 성경으로부터 비춰 나왔으며 그것은 죄인 앞에 구원의 유일한 희망으로서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함을 증언했다. 이것은 내게 새 빛이 아니었다. 지난 44년 동안 보다 높은 권위자로부터 이것이 내게 주어졌고 나는 그분의 영의 증언을 통하여 펜과 목소리로 우리 백성에게 이것을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증언에 동의한 몇 사람 외에는 이에 대해 호응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위대한 문제에 대하여 진술되고 기술된 것이 매우 적다. 어떤 이들의 설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가인의 제물과 같다고 묘사해야 옳을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제3권, 168).

화잇 여사의 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믿음과 행함>은 1888년 이전에 쓴 6개의 기사와 그 이후에 쓴 13개의 기사를 수록했는데, 화잇 여사의 율법과 복음에 관한 입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음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엘렌 화잇의 손자 아서 화잇 목사는 1888년 대총회와 관련하여 14가지 사항으로 정리했는데, 그중 8번과 13번을 다시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394~397). 왜냐하면 8번은 1888년에 교회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거절하므로 배도의 길을 갔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밝히고 있고, 13번은 1888년의 대총회가 화잇 여사의 구원관에 아무 변화를 주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화잇 여사가 왜거너 의사의 설교를 듣고 남긴 원고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나는 이런 질문을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전하는 빛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지난 45년간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비할 데 없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가슴에 전하려고 애썼던 것이 바로 이 기별이었습니다. 왜거너 형제가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런 생각들을 나누었을 때에 나는 사람의 입으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서는 그 주제에 관하여 분명히 가르친 것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나와 남편 사이의 대화 속에서 오고 간 것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서 내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보고 있지요. 그들이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은 내게 나타난 것처럼 그들에게 결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이 그것을 제시했을 때에 내 마음 속의 모든 것이 ‘아멘’ 하고 화답했습니다.”(원고 5, 1889).

*본 기사 첫 부분은 화잇 여사의 전기 <Ellen G. White, vol. 3: The Lonely Years, 1876~1891>의 자세한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도현석

사이트 정보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운영자: 이상용
  • 운영센터 : 02-3299-5294
Copyrightⓒ adventist.or.kr All right reserved.
Contact webmaster@adventist.or.kr for more information.